여행/해외여행

일본 카멜리아호 여행

정숙언니 2010. 1. 21. 18:44

일본 카멜리아 여행


일시 : 2008. 7. 23 ~ 26일(3박 4일)

일정 : 광주 → 부산(1박) → 후쿠오카 → 아소(2박) → 뱃부(3박) → 후쿠오카 → 부산 → 광주

경비 : 299,900원(가이드 20,000원 미포함)


  광주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약4시간 만에 사상터미널에 도착하였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부산역에서 내려 뒷골목으로 약20여분 걸으니 부산여객터미널에 오후5시경에 도착했다.

여객터미널은 깨끗하지 않았지만 일본으로 출발하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특히 여름방학중이라 고등학생 단체 여행객들이 많이 있었다.

부산항에는 일본의 후쿠오카 외에 백해도, 북쿠슈, 시노모새끼 등으로 출발하는 대형 여객선들이 있었다.  

 카멜리아호는 19,961톤은 전장 170m 폭24m 속력은 23.5노트 여객 522명을 실을 수 있는 거대한 선박으로 부산과 후쿠오카를 왕복하고 있다.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간단하게 라면을 먹고 19:00시 카멜리아호에 탑승하였다. 출국심사등은 매우 신속하고 간략하게 진행되었다.

  카멜리아호는 3층 구조에 되어 있었고 휴게실은 물론 목욕탕과 식당을 완비하고 비록 적지만 면세점까지 갖추고 있었다. 또한 게임장은 물론 커피와 간단한 음식류를 파는 자판기가 여러 대가 설치되어 있어 불편함이 없었다.

2층에는 주로 다인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약10여명을 수용할 수 있고 텔레비전과 침구류 그리고 다다미 구조로 되어 있었며 부부2쌍과 한가족이 배정되었으나 가족팀은 나중에 5층에 있는 가족실로 옮겼다.

그리곤 곧장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는 대체적으로 괜찮았으나 여행사별로 가이드들이 서로 앞다투어 자리를 배정받기 위해 수선을 피우고 많은 수가 일시에 식사를 하는 관계로 다소 복잡스러웠다.

22:30분에 출발하여 7시간 30분이 소요된 다음날 6시경에 도착한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휴게실에 앉아 있었으나 배가 워낙 크고 바다가 잔잔해서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어둡고 고요한 막막대해의 바다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컵라면을 먹기 위해 취사실으로 갔더니 “보따리 할머니”들의 반찬류가 비닐봉지에 담겨져 곳곳에 놓여져 있었고 호실내에는 보따리 할머니로 추정되는 60~70세 가량의 할머니들이 7~8명이 함께 모여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분들 곁에는 부피가 큰 미역과 김류 박스가 많았다. 일본에서는 한국의 김과 미역류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물건을 가지고 일본에서 팔고 또 그들이 필요한 물건을 다시 사서 한국에서 팔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전자제품이 질이 낮았을 때는 많은 수입을 올렸으나 지금은 별로라고 했다. 물론 그분들은 유창한 일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배안에 10여명이 동시에 사용할수 있는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다다미가 깔려 있는 방에서 취침을 했다. 

카멜리아호의 내부

 

카멜리아호 내부에 설치된 자판기

 

   아침 6시경 눈을 뜨자 일본 후쿠오카 항구에 정박하고 있었다. 샤워장에서 간단한 샤워를 하고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8시경까지 배에서 기다리다가 입국수속을 밟고 나서자 “어서오십시요 여기는 후쿠오카 항입니다” 라고 한글로 표기되어 있었다. 후쿠오카터미널은 2층의 구조로 되어 있고 그리 크지 않았다. 

  터미널내 청원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국말을 섞어가면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다.

후쿠오카 항 여객터미널내부(한글로 안내문이 표기됨)

 

대기중인 버스를 타고 차장으로 본 일본은 고가도로가 많은 편이 이었으며 도시계획은 비교적 잘되어 있었다. 도심의 곳곳에는 크지 않는 중고차 매매상이 보였으며 차량위에 가격이 부착되어 있었으며 차량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가게나 도시에 부착된 안내판 역시 한문이 섞어 있어 쉽게 이해할수 있었다. 또 인상적인 것은 도심에 벼가 심어진 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과 그 곁에 바로 건물이 있는데도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쓰레기투기장 또는 불법 주차장으로 전용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한게 현실이다. 한참 뒤 도시를 벗어나자 논과 밭이 보였으나 여름철의 한낮이라 그런지 들판의 논밭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을 찾야 볼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약 30여분만에 다자이후 텐만궁으로 이동하였다. 

 다자이후텐만궁은 헤이안 시대의 천재였던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학문의 신사. 일본인들은 스가와라를 학문의 신이라 칭하며 전국 각지에 텐만구를 세웠는데, 이 다자이후 텐만구가 전국 텐만구들의 총본산지이다. 스가와라는 헤이안 시대 400년 동안 65명만 합격했다는 방략시를 26세에 통과하고 33세에는 문장박사로 임명, 38세에는 조정의 2인자인 우대신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하지만 당시 조정의 일인자였던 후지와라 도키히라와의 충돌로 다자이후로 쫓겨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4명의 자식들도 유형에 처해지고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다. 스가와라가 죽고 나서 당시 도읍이었던 교토에서는 온갖 기괴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고, 그를 모함한 이들이 급사하는 일들이 생겼다. 결국 후지와라 가문이 스가와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그를 태정대신에 봉하고 텐만구를 지었다고 한다.
다자이후 텐만구 경내에는 유명한 매화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스가와라가 교토를 떠날 때 “동풍이 불면 향기를 내뿜어라, 매화꽃이여. 주인이 없다하여 봄을 잊지 말라.”는 시를 노래했는데, 그 후 이 노래에 나온 매화가 하룻밤만에 스가와라에게 날아가서 바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이 매화나무는 ‘토비우메’라고 하는데, 이는 '날아온 매화'라는 뜻이다. 한편, 다자이후 텐만구에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소조각상에도 전설이 내려온다. 스가와라가 죽은 후, 우마차로 그의 시신을 옮기는데 다자이후를 벗어나자마자 마차가 땅에 뿌리를 내린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이 자리에 다자이후 텐만구를 세우게 됐다고 한다.학문의 신을 모신곳으로 매화꽃이 유명하기도 하다. 또한 우메가에 모치라고 하는 떡이 유명하다 이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지고 시험에 붙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자이후텐만궁의 가꾸어진 정원이 길을 따라 5분여 정도 걷자 전형적인 일본 고대건물이 눈에 띄었다..

건물의 지붕은 맛배지붕 형태로 금색으로 단청이 되어 있었으며 입구에 설치되어있는 청동 황소 조각상을 만지면 학문의 신이 머리를 영특하게 해준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어루만졌다. 그래서 인지 손이 닿는 부분은 반질 반질하게 광이 났다.

중앙에 신당이 있고 양편으로는 부여의 전통복장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 종업원들이 관광상품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또 우메가에모치라는 떡을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고 각종의 시험에 합격한다는 전설로 있다고 해서 인근가게에 달려가서 우메가에모치라는 떡을 사먹었다. 가격은 3개에 50엔으로 기억되는데 맛은 그다지 없었다,

 

만지면 공부의 신의 도움받아 영리해진다는 황소상

  

텐만궁 전경

 

텐만궁 전경 사당

 

단독주택의 정갈한 모습

  

텐만궁 입구의 일본 단독주택들은 아담하고 소담스러웠으며 작은 공간이지만 정원이 잘가꾸어 져 있었다.

도로는 그리 넓지 않았지만 깨끗하였고 도로시설물들은 단정한 느낌을 받았다.

도로의 차선은 우리나라 보다 약간 적어서 인지 차량은 대체적으로 소형차가 많았다.

그리고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비빔밥을 잘한다는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주택가 한편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2층 건축물로 눈에 거슬리지 않은 건물 형태로 띄고 있었다. 2층에서 식사를 하였으나 맛은 일본인의 입맛을 고려해서 인지 심심한 편이었다. 

 구마토토성은 1601년 가토 기요마사무로마치 시대에 세워진 치바성과 구마모토성이 있던 챠우스산(山) 일대에 성을 쌓아 1607년에 구마모토성을 완공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혼마루(주성)에는 대천수각과 소천수각을 세우고 각 성곽에는 우토 성루를 비롯하여 3층 천수각에 필적할 5단 성루를 5기나 나란히 세웠다. 가토 씨가 파면된 후에는 호소카와 씨가 들어오고 메이지유신을 맞았다. 1877년 세난 전쟁 때 신 정부군을 물리쳐 성의 견고함은 증명되었지만 혼마루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토 성루를 비롯하여 12기의 성루가 남아 있고, 세쇼류(淸正流)로 불리는 높은 석벽도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1960년에 대천수와 소천수이 재건되었다. 현재 니시데마루 성루와 문이 복원되었고 혼마루 궁전의 완성도 머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타고 1시간여만에 구마모토로 이동하였다.

 구마모토성은 입구는 넓은 광장으로 이루어졌으며 한편은 주차장 또 한편으로는 축구장 2~3배 크기에 잔디와 고목어 어울어져 산책하고 달리기를 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광장을 지나 성곽 앞에는 인공으로 넓은 해자가 설치되어 있었고 교량을 이용하고 입구에 진입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가뭄이어서 인지 해자내에는 물이 없었다.

성곽의 높이와 크기는 매우 웅장했으며 성벽을 쌓은 돌쌓기는 정교하였다.

성벽을 지나 천수각은 목조 건축물이 약6층 높이 건축되어 있었다. 천수각은 건물 내부 계단으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으며 각층의 계단 한켠에  당시의 장군들의 영정과 전쟁시의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약 20여분 올라갔더니 조망이 확 뜨여 사방에 한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은 더위와 땀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시원했다.

40여도에 가까운 더운 날씨 탓에 구마모토성내의 노점상에서 슬러시와 비슷한 과일과 얼음을 갈아서 만든 쥬스 사서 먹었으나 더위를 떨쳐 버릴수는 없었다.  

구마모토성 입구

 

구마모성 주변에 설치된 해자(가뭄이라 물이 없음)

 

구마모토 성내의 천수각

 

천수각에서 내려보는 시내 전경

 

성내부에서 본 천수각

 

정교한 성벽의 돌쌓기

 

주차장에서 본 구마모토성의 전경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아시아최대 규모라는 “캐널시티”라는 대형 쇼핑타운 갔다.

버스속에서 가이드가 동경날씨가 몇일째 40도를 훌쩍 넘었으며 몇 십년만에 찾아오는 찜통더위라고 했다.

2개의 건축물로 쇼핑공간과 사무공간 구분되어 있었으며 쇼핑공간은 7~8층 규모로 매장이 매우 넓었고 건물과 건물의 중앙에는 음악분수대를 설치하고 시간대별로 작동하도록 되어 있었다.

쇼핑타운은 층별로 판매상품을 구분하고 있었으며 1,2층은 각종 악세사리류 및 잡화류를 파는 점포들이 많았으며 가격은 저렴한 편이었다. 한국관광객의 방문이 잦아서 인지 간단한 한국말과 한글이 표기된 점포도 있었다.

길거리는 한국의 도시와 큰 차이가 없었으며 행인들도 복장과 행동은 한국과 같았다. 다만 가끔 일본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과 소형차 그리고 거리에 표기된 일본어만 다른 것 같았다.  

다시 아사이 맥주공장을 방문하였다.

공장은 시내권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공장입구의 현관도 주변에 있는 일반 점포의 입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공장부지와 공장이 있었다.

자동화 설비시설로 맥주의 제조공정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관람시설과 관람통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내부에는 에어콘이 시설되어 시원하게 구경할수 있었으며 안내원은 능숙한 한국말로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공장부지내에는 생맥주통과 캔맥주통이 산더미 만큼이나 쌓여있었으며, 휴게실에는 맥주 시음장코너와 간단한 안주류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으며 특히 비스켓이 맛있었다.

아소의 온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지나 시골길과 농로 같은 작은 길을 따라갔다. 주변의 산은 화산의 흔적인지는 몰라도 높고 산세가 험한 것 같았고 병풍처럼 높은 산이 주변을 메워싸고 있었다. 논과 밭에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야볼수 없었지만 논의 벼와 밭의 곡식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농가의 주택도 한국의 농가주택과 비슷했지만 한국에 비해 잘 정돈되고 깨끗하였다.

약 3시간 만에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5층 건물로 오래되었지만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황태자가 이곳을 방문하여 온천욕을 즐겼다고 해서 황태자의 사진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호텔방 바닥은 다다미가 깔려 있었으며 보온통과 녹차 그리고 비스켓 그리고 깨끗한 기노모복이 준비되어 있었다. 온천탕에 갈때는 반드시 기노모복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호텔내부의 화장실에서 일본사람의 근면성을 엿 볼 수 있었다.

욕조는 한사람이 겨우 앉을 정도의 크기였으며 세면대에서 사용한 물은 변기의 물로 재 사용할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일본은 온돌문화가 없기 때문에 추운 날이면 작은 욕조를 물을 채우고 몸을 덥혔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사람 움끄리고 살아서 허리가 많아 굽었다고들 한다, 또 옛날에 한 백수십년동안 법으로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해서 일본사람들의 치아가 좋지 않다고 했다.

잠시후 호텔내 식당에서에 저녁을 먹었다.

식사은 야채와 돼지고기 그리고 매실등 밑반찬으로 정갈하게 상차림하여 한사람씩 준비된 작은 식탁에서 앉아서 먹도록 되어있었다. 소문처럼 일본사람들이 소식한다고 해서 음식량이 적을까 했는데 양은 많았다.

그리고 맛도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왔으나 주변에 주택이 많지 않아서 인지 인적이 드물고 거리는 어두었다.

슈퍼는 우리나라의 규모 진열품 배치 모든 것이 너무나도 흡사했으며 판매하는 야채, 고기, 잡화등 모든 것이 우리나라의 슈퍼인양 착각할 정도 였다.

술안주를 하기 위해 안주거리를 사고 잡화류 몇 개를 사고 어렵지 않은 계산을 하고 돌아왔다.

기노모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1층에 있는 온천탕으로 갔더니 탕은 넓지 않았으며 탕의 온도는 약 39도 정도로 따뜻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외부와 연결된 창문을 열고 노천탕으로 나가보니 대나무로 담장을 설치하고 자연온천수 그대로 된 노천탕이 있었으며 온천수 유출구의 돌은 노란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는데 이는 온천수 속의 유황성분이 묻고 쌓여서 생긴것 같았다.

반신욕으로 땀을 흔뻑 흘리고 싶었지만 온도 때문에 싶지 않아 샤워만 하고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준비한 컵라면을 먹기 위해 정수기를 찾았으나 호텔내에는 찾야 볼 수가 없었다,

소주한잔을 하고 첫날밤의 잠을 청했다.

시내에 설치된 간이 흡연실

 

아소호텔 전경(한문으로 어만이라고 표기됨)

 

호텔내부의 변기모습 상단부분이 세면대임

 

호텔내부의 욕조 모습(겨우 한사람이 앉을정도의 크기임)

  

호텔내 개인별 식탁

 

아침6시에 일어났으나 욕실에 씻기에는 너무 비좁아서 온천탕에서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아침 역시 저녁과 마찬가지로 한사람씩 먹을수 있도록 정갈한 식단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농촌의 길가나 길목에 인근 농부들이 방금 채취한 농산물을 진열대에 진열하고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그런데 주인은 있지 않고 단지 가격표만 부착되어 있어서 누구나 지나가면서 돈을 놓고 사간다고 한다.

일본의 농촌에는 이러한 곳이 많다고 한다.

도로변에 설치된 농산물 무인판매대

 

아소산을 가는 동안 도시주변에 높게 우뚝 솟은 주변의 산들과 화산에 의거 큰나무나 잡목은 거의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산자락은 넓은 푸른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굽이 굽이 좁은 도로를 따라 아소산 케이블카 탑승지에 도착했다.

케이블카를 따고 아소산 정상에 올랐다. 

 아소산은 세계최대의 칼데라 복신 화산를 가진곳으로 일본의 최초 국립공원이다. 높이 1,592m. 구마모토[熊本] ·오이타[大分] 2현(縣)에 걸쳐 있다.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가지는 복식화산으로 아소국립공원이 주요부를 형성하며, 기리시마[霧島] 화산대의 북단과 하쿠야마산[白山] 화산대가 마주치는 지점에 있다. 홍적세 이후 자주 열운상(熱雲狀)으로 분출한 아소 용암은 안산암류가 주체이다. 중앙화구구의 나카가쿠산[中岳]은 현재도 활동 중이며, 그 화구(火口) 구경이 아소산 관광의 중심이다. 교토대학[京都大學] 아소산연구소와 기상청의 아소산관측소가 설치되어 있다.

  아소산의 활화산의 모습은 유황까스 때문에 때론 볼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분화구 주변의 흙은 화산가루로 검고 칙칙했으나 관광통로 및 안전시설은 대체적으로 잘 정비된 느낌을 받았으며 분화구 주변에는 수십개의 방카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는 분화구에서 화산이 폭발할때 관람객이 대비할수 있도록 안전을 위해 설치하였다고 했다.

분화구에 가까이 갈수록 유황냄새가 진동을 했으며 분화구에서는 계속해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이는 유황가스라고 했다. 분화구 안은 하얀연기를 내뿝고 있었으며 잠깐씩 연기사이로 수십미터 아래의 분화구에서는 비취색 용암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후 연기가 일시에 거치더니 분화구의 연푸른 용암이 모습을 드러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곤 잠시후 용암은 연기에 가려져 버렸다.

내려오는 길 주변에는 화산재가 널려 있어서 화산 폭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화산 폭발 후 생긴 수십미터의 계곡 그리고 거대한 화산석 덩어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식물이 전혀 살고 있지 않는 짙은 잿빛의 흙으로만 이루어진 편편한 들판을 볼수 있었다. 이는 용암이나 화산재로 인해 발생한 곳이라고 했다.

 

아소산 산자락의 초원

 

아소산 케이블카 탑승지

 

케이블카 탑승티켓 창구

 

아소산 주변의 산자락 모습

 

아소산 정상 주변의 화산 흔적들

  

분화구와 용암의 모습

 

분화구와 용암의 모습

 

대피시설인 방커

  

온통 화산재로 덥힌 황량한 들판의 모습 

 

 분화구에서 내려오는 산책로

 

내려오는 길은 주변경관과 잘 정비된 산책로로 딸 상쾌한 마음으로 20여분 만에 걸어 내려왔다.

버스를 타고 아소산 중간에 있는 구사센리가 앞에 위치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구사센리를 한문으로 초천리(草千里)로 표기되어 있어 풀밭이 천리를 이른다고 해서 명명된것 같았다.  

 구사센리(草千里) 평지의 초원으로 보이는 곳으로 사실은 에보시다케의 기생화산으로 화구가 깊지 않아 얼핏 보면 초원으로 착각하기 쉽다. 직경 약 1km의 이중화구에는 소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 목가적이며 말을 빌려 타고 구사센리를 일주해 볼 수도 있다. 

뷔페식당이었으나 관광객 위주의 식당이어서 인지 복잡함 때문에 간단하게 요기만 채웠다. 휴게소 앞에서도 아소산의 넓푸른 초원과 분화구에서는 연기가 무럭무럭 나오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본 구산센리

 

아소산 휴게소 모습

 

 

아소산 휴게소에 본 아소산 모습

 

이를 뒤로 하고 유후인 민예촌으로 향했다. 

  유후인 온천(由布院温泉)은 일본 큐슈 오이타현 유후 시에 있는 온천이다. 벳부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후쿠오카에서 기차로 2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는 도시이다. 유후인 온천은 벳부, 구사쓰에 이어서 일본에서 3번째로 용출량이 많은 온천이다. 유후인 역에 내리자마자, 유후다케(1584m)라는 산이 웅장하면서도 자애로운 모습으로 유후인을 감싸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유후인 역에서 긴린코라는 호수까지 이르는 길에는 다양한 상점들과 온천여관, 미술관 등의 시설들이 이어져있다. 유후인에는 다양한 온천여관이 있는데, 무소엔, 사이가쿠관 등 유후다케의 시원한 전망을 가지는 노천온천들이 있다.

 날씨는 연일 매우 습하고 더웠다. 유후인은 조그마한 마을형태를 띄고 있는 곳이다. 좁은 마을길을 접어들자 도로변에 각종 물건을 판매하는 조그마한 가게들이 즐비하게 이어졌다. 도로변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왕래하고 있어서 차량통행 조차 힘든 지경이었다. 마을 중간에 있는 주차장에서 내리자 몇 미터를 두고 맑고 넓은 호수가 있었다. 이곳을 긴린코 호수라고 부른다고 했다. 

  킨린코호수 아침안개가 피어오르는 환상적인 풍경이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호수. 킨린코(킨린 호수)는 유후인에서 가장 활기찬 지역에 있는 호수이다. 호수 서쪽 바닥에서는 뜨거운 온천수가 솟아나오고 동쪽 바닥에서는 차가운 샘물이 솟아나오는 신기한 호수로, 샘물과 온천수의 온도차로 인해서 수면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환상적인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호수에서 발생하는 가스가 바로 유후인의 명물인 아침안개를 만드는 원인이라고 하는데, 이 아름다운 모습은 유후인을 대표하는 풍물이 되고 있다.
1884년 일본의 유학자인 모리 쿠우소우(毛利空桑)가 물고기 비늘이 석양에 비춰서 금색으로 빛나는 모습을 보고 킨린코(金鱗湖)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물 속의 고기떼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투명하다. 킨린코는 이른 아침과 달빛이 밝게 빛나는 밤의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근처에는 유명한 남녀 혼욕 온천인 시탄유(下ん湯)와 마르크 샤갈 유후인킨린코 미술관 등이 있다.

호수의 전경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워 더욱 아름다웠다. 호수주변으로 난 산책로 주변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옛날의 목욕탕이 그대로 있었으며 목욕탕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구조는 우리나라 60년대 동네 목욕탕과 같은 구조와 같이 탕 주변에 둘러앉아 바가지로 물을 길러 씻는 형태로 되어 있었다.

또 작은 도랑에는 온천수가 흘러내려 그곳에 앉아 편하게 족욕도 하고 손발을 씻을수도 있었다. 한가로이 자유시간을 보내고 쇼핑을 위해 점포로 갔는데 일본 토속상품 및 음식이 팔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로 분볐다. 우리나라 천원마트 처럼 각종 악세사리를 싸게 파는 곳도 있었다.

킨린코 호수의 모습

 

호수주변 산책로에 있는 옛날 목욕탕과 족욕장

 

유후인에는 버스를 타고 유노하나 온천으로 향했다.

뱃부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에는 연푸른 초지가 융단을 깔아 놓은 것 처럼 펼쳐져 있었다. 약2시간여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온천이 가까워졌는지 산기슭 이쪽 저쪽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노천으로 분출되는 온천수에서 유황가스와 수증기가 배출되는 모습이라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가마토 온천은 초가집처럼 움집을 짖고 그속에서 유황을 재배하는 곳으로 “유노하나”를 생산하는 곳이라고 했다. 유노하나는 피부병과 류마티스 근육통 신경통에 효과가 있으며 이곳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채취한다고 했다.

초가움집 20여개 정도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는 편이었고 또 한편에는 판자로 만든 움집같은 구조물 안에 작은 연못을 파고 유황 온천수를 채워 5~6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도록 시설되어 있었으며 30분 또는 1시간으로 사전에 예약하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안쪽의 간이 판매장에는 유노하나로 만든 각종 목욕제를 판매하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본 뱃부항의 모습

 

유노하나 온천의 모습(초가집이 유노하나 채취장

 

뱃부 시내에 들어서자 곧바로 쇼핑센터 도착했다. 패키지 상품에는 당연한 옵션이기에 그냥 아이쇼핑만 하기로 마음 먹었다. 같은 일행의 아주머니들은 진주로 만든 화장품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갖고 구매도 하였다 물론 사전 가이드의 설명에 영향을 받은것 같았다.

해변에 변두리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다.호텔은 15층정도 되는 규모가 큰 호텔이었다. 

이 호텔 역시 온천탕을 겸비하고 있었고 호텔방 내에는 다다미 바닥에 기노모복과 녹차 보온통 비스켓이 좌탁위에 정갈스럽게 놓여 있었다.

11층에 온천탕이 있었으나 수용인원이 약10여명 정도 규모는 매우 적었지만 이곳에서 후쿠오카의 전경과 바다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이 호텔 역시 어느 곳에도 온수기는 없었다. 컵라면을 먹기 위해 한국에서 준비해 갔으나 일본의 호텔과 주요시설에는 온수기가 비취되어 있지 않아 먹을수가 없었다.

식사후 후쿠오카의 밤문화를 구경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길거리의 풍경은 우리나라와 너무나 흡사해서 외국에 나와 있다는 생각마져 들지 않을 지경이었다. 가령 이팝나무 가로수, 보도블럭의 크기나 디자인 도로시설물 점포의 형태등은 물론 산자락에 자라고 있는 야생초 가정집 정원에서 키우는 정원수 마져도 우리나라의 형태와 비슷했다. 슈퍼 역시 판매하고 있는 상품이 단지 일본어로 표기되어 있다는 것만 다를뿐 디자인 색채는 비슷했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안주로 몇가지를 사고 호텔방에서 소주 한잔을 먹고 일본에서의 두 번째 밤을 보냈다. 

씨사이드모모치 해변의 호텔(2박)

 

호텔 내부의 모습

 

호텔에서 본 뱃부 시내

 

호텔옆 해변가의 모습

  

 가마토온천지역은 벳부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인 지옥온천 순례 코스 중 한곳으로, 지옥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로 밥을 지어 신에게 바쳤다고 하여 "가마토"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섯개의 연못이 온도에 따라 각각 다른 색깔을 보이며, 이곳에서 맛보는 온천계란 또한 별미이다.

 아침6시에 일어나서 가볍게 샤워를 하고 뷔페식당에서 간단한 아침을 하고 가마토 지옥온천을 향했다.

지옥온천 단지내에는 여러곳의 체험장이 운집하여 있었으며. 체험장 입구에는 거대한 솥이 있고 솥과 주변에는 하얀 광목으로 둘둘 감아놓았다. 아마 온천수의 증기로 밥을 지어 신에게 바쳤다는 전설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여졌다. 그중 한곳으로 들어서자 입구옆의 작은 연못에서 진흙이 액체화되어 부글부글 끓어올라오는 모습이 신비롭게 보였다. 또 한곳은 연한 비치색 연못에 역시 온천수 하연 연기를 내뿜으며 끓어 오르고 있었고 이곳 저곳에서 고온의 온천수가 땅위로 솟아오르는 모습들이 기이하고 신비스러웠다.

다른 한쪽에는 설치된 족욕장에서 들어서자 타올 사용료가 2천원 내자 타올을 주었다. 족욕을 하면서 온천수에 쌇은 달걀도 먹으면서 즐기려고 했으나 너무 뜨거워서 잠깐 동안 밖에 할수 없었다.

가마토 온천 입구

 

진흙이 끓고 있는 모습

 

가마토 온천내 온천

 

 

 

지옥온천을 나와 버스를 타고 2시간여 만에 우리가 입국했던 후쿠오카 항에 도착했다.

후쿠오카항에는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각종 안내 및 홍보 광고물이 여기 저기 부착되어 있었다.

11시경 간단한 출국심사를 하고 배에 오르자 잠시후 12시 30분경에 한국으로 출발하였다.

후쿠오카 항 전경

 

후쿠오카항 여객터미널에 부착된 한글 광고

 

바다는 오늘도 잔잔했으나 날씨는 습하고 더웠다. 약 3시간이 지나자 멀리 대마도가 보였다. 하지만 구름이 끼여 선명하게 볼 수는 없었다.

카멜리아호에서 본 현해탄

 

멀리 희미하게 대마도가 보임

 

부산항의 부산타워가 보임

 

18:00경 안개사이로 멀리 부산타워가 보이고 이내 부산의 부산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안에 설치된 작은 면세점의 판매하는 물품이 다른 면세점에서 보다 싸다고들 해서 로얄샬로트21년산이 76천원정도 해서 담배3볼과 함께 구입하였지만 입국심사에는 별다른 재제는 없었다.

터미널에 내리자 몇몇 사람들이 다가서더니 배에서 구입한 술을 팔라고 했다.

부산터미널에서 광주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피곤한 몸을 위해 잠을 청하려 했으나 일본에서 라면과 오뎅 전문점에 가서 실컷 먹어보려고 했는데 이를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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