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계등 여행 1부(천문산편)
일 정 : 2009. 11. 13(금) ~ 2009. 11. 17(화)
여행사 : 모두투어
항공사 : 아시아나항공
경 비 : 499,900천원
-추가옵션 : 160달러(가이드팁 40, 천문산케이블 70, 리프트 30, 발맛사지 20달러)
-기타경비 : 유류할증료 34,000원, 단체비자 21,000원
-국내경비 : 광주→인천공항(34,000원), 인천공항→광주(심야 30,900)
주요일정
광주→인천공항→장사(1박)→장가계(2박)→장사(1박)→인천공항(1박)→광주
광주터미널에서 11시30분 우등고속버스를 타고 인천대교를 지나 인천공항에 4시간30분이 소요된 15시 30분경에 도착하였다.
인천공항에서 17:00분에 일행들과 미팅하기로 해서 남은시간은 공항에서 쉬면서 기다렸다.
이번에 여행하는 사람은 부산아줌마4명. 서울할머니 4명, 경기도 미시 3명 우리2명 총 13명이었다.
여행사를 통해 단체비자를 신청했기 때문에 19:00에 순서대로 출국심사를 받으며 20:20 아시아나항공(501)에 탑승하였다.
비행기는 좌석이 좌우 3, 3석으로 탑승자의 90%이상이 중년의 한국 관광객들로 이루어졌다.
좌석표가 여행사나 단체별로 구입되지 않아 섞여서 좌석이 배치되었지만 서로 양보하여 일행들과 같이 앉아 갈수 있었다.
탑승자들은 기내식 후 서비스로 제공하는 술을 먹고선 들뜬 기분에 여기저기서 왁작지껄 거렸다.
장사에 도착한 시간은 22:50분 우리나라보다 중국은 1시간이 늦으므로 3시간30분이 소요되었다.
입국심사를 받았는데 장가계가 한국사람의 선호하는 관광지라서 그런지 심사나 절차가 간편했으며 입국심사관들도 “줄을 스세요” 이쪽으로“ 등등 한국말을 잘했다. 공항에서 나오자 40대중반의 남자인 현지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와 함께 대기중인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버스는 오래되었지만 외관상 낡아 보이진 않았다.
공항은 물론 도시의 거리가 전체적으로 어두웠는데 이는 중국이 전력 사정 때문이라 한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23:50이었으며 호텔은 생각보단 깨끗했다 아마 여행사의 옵션이 “호텔업”상품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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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호남성 소재지(우리나라로 보면 도청소재지와 비슷함)로 인구는 약450만 정도이며 2000년의 역를 가진고도이자 마오쩌둥(모택동)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도시이다. 최근에는 한국인의 장가계 관광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도시이다. |
호텔은 “명성국제호텔”로 25층 규모로 건축한지 얼마 되지 않은 5성급이라고 한다.
호텔내의 비치된 1회용품은 모두 유료라고 해서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타올과 물만 무료라고 했다. 우린 17층 1708호에 배정되었다.
호텔내에는 한국 관광객로 비행기에서 봤던 낯익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일정이 같거나 비슷한 상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호텔내의 시설은 깨끗하고 초현대식 시설이었으며 tv 체널 중 kbs방송도 나왔다. 호텔내 비품중 메모지에 꽃힌 펜이 연필이라는게 이색적이었다. 잠시 후 핸드카로 짐을 운반해준 종업원에게 팁으로 천원짜리 하나를 주었다.
여장을 풀고 씻고 나니 새벽1시 46분이었다. 이렇게 첫날밤을 보냈다.
장사에서 첫날밤의 호텔 전경
호텔내부 전경(비치된 일회용품 유료)
호텔내부 전경(화장실)
호텔내의 메모장(연필심이 있는 펜)
호텔내 뷔페 식장
다음날 아침 6시에 기상을 하여 샤워를 하고 2층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뷔페식으로 음식은 깨끗하고 좋았다. 하지만 일부 관광객 중에서는 한국에서 준비해온 고추, 상추등 밑반찬으로 요란스럽게 식사하는 모습이 과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침 7시 30분에 장가계로 가기위해 호텔 앞에 주차중인 버스에 탑승하였다. 장가계까지는 약4시간정도가 소요된다고 하였다.
날씨는 구름이 잔뜩 끼고 흐리고 약간 쌀쌀한 날씨로 우리나라 초겨울 날씨였다.
시내길은 십여분 달리다 이내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는데 고속도로는 대체로 한가한 편이었고 노면이나 도로시설도 양호한 편이었으나 중국인 운전자는 한가한 고속도로를 과속이나 추월도 하지 않고 점잖게 운전을 했다. 중국사람들의 성격 원래가 늦고 게으르기 때문이다고 가이드가 귀뜸을 해 주었다.
창가로 보이는 고속도로 주변은 높은산은 많지 않고 주로 낮은산이나 구릉이었으며 밭작물과 형태는 한국 농촌모습과 재배품종이 별 차이가 없었으나 유독 귤을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3시간여 동안 운행중 휴게소에 들렸으나 휴게소라고 하기 보다는 한국의 국도변에 설치된 주유소나 같수준이었다. 휴게소는 화장실과 매점이 시설의 전부였으며 매점내의 진열된 모습과 상품은 한국의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휴게소내의 매점(과일상)
휴게소내의 매점의 판매대 및 상품
가이드가 휴게소에서 귤을 사서 배분해 주었는데 맛은 새큼했고 우리 귤 맛과 별 차이는 없었다.
장가계의 관광객의 90%이상이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사람의 편의에 맞도록 한글 안내문과 시설이들이 개발되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수 십년 전부터 개발하여 개방해 왔던 “원가계”는 갈수록 관광 인파가 줄어들어 몇 년전에 천문산코스를 개발하였고 현재는 “양가계”를 개발중이 있으며 개발이 완료되면 개방을 하고 원가계 코스를 폐쇄한다고 하였다.
지루한 고속도로의 여행을 마치고 11:30분 드디어 장가계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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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는 억만년의 침수와 자연붕괴 등의 자연적 영향으로 오늘의 깊은 협곡과 기이한 봉우리 계곡의 자연절경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대자연의 미궁과 지구의 기념물 이라 부른다 한다. 장가계벨트내에 원가계 천문산. 천자산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원가계가 관광이 내리막길이라서 현재 천자산을 개발하였고, 현재는 양가계를 개발하고 있으며 원가계 관광이 내리막길 일 될 때 개관한다고 한다. |
장가계는 넓고 광활한 도시로 현대화 물결에 발맞추어 현대식 건축물이 즐비 했으며 또 곳곳에서 건축물을 건축하고 있어 활기찬 느낌을 받았다.
12:40분경 한국음식을 한다는 아리랑 식당에 도착했다. 역시 식당입구 골목길에는 한국인을 싣은 관광버스로 즐비해서 교통이 혼잡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10여평 되는 작은 식당내의 홀에는 한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마자 가이드가 관광객 대표가 되어 달라고 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동의했다.
음식은 한국음식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정체 불명의 음식과 배추와 된장이 스치고 지나간듯한 된장국 그리고 계란말이 등이 나왔으나 맛이 형편없었을 뿐만 아니라 깨끗하지도 않했다.
식당입구에 있는 포장마차에서는 중국 국수를 팔고 있었는데. 잘 씻지 않은 듯 한 외모에 너절한 옷차림의 아줌마가 육수에 국수를 넣고 야채와 돼지고기를 얻은 중국식 국수를 팔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듯 한 어린이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귤10개 정도를 담은 봉투를 들고 관광객을 쫓아다니면서 “귤 싸요 천원” 하면서 옷자락을 잡고 매 달렸다. 저만치에서는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온 가이드가 명찰을 하나 건너 주었다. 점심식사 중에 사진까지 부착된 명찰을 급히 제작하여 주었다. 처음에는 그냥 명찰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명찰 폐용자는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가 모두 면제 되었다. 또한 가이드들이 사용하는 매표소 무료자 전용통로를 이용하였다. 이는 한사람의 입장료를 절감하기 위한 방법 이었다. 여행 중 나와 같은 명찰을 차고 다니는 다른 팀을 자주 볼수 있었다. 여행사나 현지가이드가 경비를 결감하기 위해 사용하는 불법행위 인 것 같았다.
물론 명찰에 표기된 이름은 같지만 소속이나 주소는 틀린 위조된 신분증이었다. 중국에서는 단체관광일 경우 관광객의 대표나 인솔자는 입장료를 면제해 주는 제도를 악용한 것으로 보여졌다.
점심식사를 했던 한식당
한식당앞의 노점 국수집 모습(어린이가 손님)
가이드가 만들어준 명찰(앞면은 사진과 소속이 기재되어 있음)
천자산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을 하였다. 그러자 잠시후 중국인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카메라와 비디오를 들고 탑승하였다(이후 비디오걸로 칭함). 앞으로 우리와 함께 동행을 하면서 사진촬영과 비디오를 촬영하여 판매하게 된다고 했다.
버스에 탑승한지 약 50여분 만에 천자산 케이블카 탑승지에 도착하였다.
케이블카는 6명이 탑승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한국의 형태와 비슷하였다. 케이블카 탑승지가 시내에 위치하고 있어 출발시에는 시내지역을 낮게 관통한 후 천문산자락으로 향했다. 케이블카 탑승시간은 약40분 정도라고 했다.
| 천문산은 고대에는 운몽산, 고량산으로 불리웠으며, 장가계의 산 중에서 역사에 가장 먼저 기록된 명산이다. 삼국시대 오나라 영안6년(263년), 고량산에 홀연히 절벽이 열리니, 마치 문과 같아서, 세계적으로 기이한 경관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천문동으로 그 이름을 얻어 천문산(天門山)이라 한다. 천문산은 장가계 시내에서 8KM 떨어져 있는 해발 1518미터의 산으로, 산의 사방은 모두 절벽이며, 봉우리는 하늘에 닿을 듯하고, 그 기세 역시 하늘을 찌르는 듯 장대하다. 성숙한 카르스트 석회암 지형으로 높고 기이하면서도 험한 지세가 더욱 사람들을 끌어 당겨서, 유사이래 수많은 귀족, 관리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 문화의 내막이 심오하고, 장가계의 성지로서,'장가계의 혼', '호남 서쪽의 제일가는 신성한 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천문산 정상까지 가려면 시내에서부터 이어진 세계최장 길이의 7.45km 높이 1,277m 케이블카을 타고 올라가는데 편도만 35분이 걸린다. 케이블에서 내려서는 다시 99개의 고개를 버스를 타고 올라가며 999개의 가파른 계단까지 올라야 한다. 한편 천문동은 천문산의 중상부에 위치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천연 종유굴로, 해발 1300미터, 높이 131미터, 너비 57미터, 깊이 60미터에 이른다. 천문동이라는 이 대자연이 만들어낸 걸작물은, 천미터 높이의 절벽위에 걸려있어, 마치 밝은 거울이 높은 곳에 걸려있는 듯, 하늘의 문이 열린 것처럼, 구름과 안개를 빨아들여, 천궁의 궁궐의 신비감이 충만하다. 그 형성원인은 지금까지도 타당한 과학적 설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천문산의 정상부분은 비교적 평탄하고, 면적이 약 2평방 킬로미터에 달한다. 비교적 완전한 원시삼림을 보유하고 있는데, 1992년 7월 장가계의 두번째 삼림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케이블카가 서서히 시내을 벗어나고 고개를 넘자 천자산 자락이 보이기 시작하고 지상에 보이는 사람들이 작아지더니 이내 천자산의 웅장한 봉우리가 눈앞으로 펼쳐졌다. 하지만 날씨가 흐린 탓에 주변의 경치는 선명하지 못했다.
케이블카에서 아래로는 천문산을 구불구불 휘감아 올라가는 통천대도(通天大道)라는 도로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굽이굽이 구불 구불 산자락을 돌고 또 돌아 도로를 개설한 중국인들의 개척성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설악산의 한계령이나 열두고개의 도로는 견줄 수도 없었다. 규칙적으로 덜커덩하는 소리와 케이블카가 약간 좌우로 움직여 겁도 났지만 산자락의 아름다움 때문에 느낄수 없었다.
주변경치를 감상하던 중 갑자기 안개가 짙어져서 1미터 앞도 전혀 볼 수가 없었지고 오직 케이블카내의 사람들만 보였다 이렇게 안개속에서 약 2분정도가 오르자 갑자기 햇빛이 들어오고 푸른 하늘이 보였다.
케이블카의 아래를 보니 우리가 구름위에 올라서 있었다. 마치 구름 뚫고 올라선 모습 같았다.
이내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 나오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바다 그 위에 울긋불긋 서있는 돌봉우리의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비디오걸은 우리보다 더 큰소리로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비디오걸도 이곳이 처음인것 같았다. 물론 카메라 메고 비디오를 촬영하자 매표소에서 나와같이 무료통행로 들어와서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천문사까지 10여분을 도보로 이동하자 하늘높이 솟구쳐 있는 돌봉우리 측면 암반에 폭 약2m 정도의 콘크리트 교량을 설치하여 관광객들이 통행 할수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다. 교량 아래는 수백미터의 낭떠러지되어 있는데 돌봉우리 옆면의 암반을 뚫고 철근은 박아서 약3km 정도의 교량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산아래로는 하얀 뭉실 구름이 바다같이 깔려있고 산봉우리가 구름속에서 불쑥 솟아있는 모습과 산봉우리의 옆으로 설치된 교량 모습이 어우려져 너무나 아름다웠다.
교량의 바닥은 돌과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으며 아까 내린 눈이 약하게 깔려 있어서 미끄러웠다.
간간히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었다. 산봉우리를 하나를 돌고 또 돌면서 40여분 동안 자연의 절경을 구경하였다.
천문사 케이블카를 타고 본 시내 전경(시내에서 올라가는 중 촬영)
안개속에 쌓인 천문산 산자락(케이블카에서 촬영)
케이블카에서 본 천문산 산자락
케이블카에서 내려본 통천대교 모습
케이블카에서 본 구름바다(구름을 뚫고 올라와서 촬영)
케이블카 정차지(천문산 정상부)
천문산 통행로(암벽에 설치된 도로와 오른편 구름이 환상적임)
구름속에 갇힌 천문산의 전경
구름위에서 촬영한 천문산의 결정(멀리 보이는 부분도 구름층임)
교량에서 돌봉우리 아래를 보고 촬영한 광경
돌봉우리의 암반위에 설치된 통행로의 모습
안내판에 설치된 한글 안내문(등반금지 내용이 좀~~)
구름속에 쌓인 천자산 전경(전망대에서 촬영)
천문산 계곡를 뒤로 하고 천문사로 향했다 천문사로 가는 길은 대체적으로 완만하고 주변의 밭에서는 군복을 입은 7~8명의 젊은 사람들이 밭을 일구고 있었는데 이곳에 근무하는 군인들인지 아님 관리사무소 직원인지는 구분할 수는 없었다.
매서운 바람과 추위에 움크리면서 약30분을 걷자 천문사의 뒷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문사의 담장을 따라 걸어 정문쪽에 도착하였다. 날씨가 몹시 추웠다.
천문사는 당나라시대에 건축된 건축물로 사찰의 규모나 가람이 매우 컸다.
경내를 들러보고 난 후 매점에서 따뜻한 맥심커피를 천원을 주고 사서 몸을 녹여 보왔다.
천문사 구경을 간단히 마치고 리프트카에 탑승했다. 리프트카는 한국의 스키장에 있는 것과 동일하였다. 리프트카 아래는 등산로가 보였으나 정비가 잘되어 있지 않았으며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고산지역 밭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푸른색 제복을 입은 사람이 보임)
천문사 전경
천문사 리프트카 모습
약15분정도 리프트카를 타고 내려 빨간색 한문으로 표기된 작은 표지석들이 세워져 있는 등산로를 따라 5분여 걸어가자 아까 우리가 내렸던 케이블카 탑승지에 도착되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자 하얀 뭉실 구름이 다시 우린 감싸 주었고 또 구름속에 갇히듯이 숨 죽었더니 잠시후에 구름이 뚫고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천문산 자락의 왼쪽 봉우리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밧줄이 매달려 있었는데 이는 올림픽성공개최와 기네스 기록에 도전하는 줄타기 명인이 줄타기를 시도하고 아직 철거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그높이나 길이가 엄청나서 아찔할 정도였다.
산봉우리와 산자락의 기암괴석을 감상하면서 10여분 내려갔더니 아까 올라오면서 그냥 스쳤던 케이블카중간 경유지에 도착하였다. 케이블카에 내리자 오후 4시30분이었는데도 날씨가 매우 추웠다. 주차장 한편으로 천문동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약200여명의 관광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의 한국관광객이었다.
셔틀버스는 약35인승 정도이며 계속적으로 운항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도 20여분 만에 셔틀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본 구불구불하고 산봉우리를 굽이굽이 감고 도는 통천대교를 따라 천문동으로 향했다.
도로의 너비 약 6m정도로 노면은 콘크리트였으며 도로의 형태는 암반을 지붕 삼고 또는 터널을 뚫고 때론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로 이루어졌다. 이 길을 따라 약 20여분만 이동하자 천문동에 도착하였다.
케이블카 승강장내 벽면에 설치된 한글 안내판(박신거리지?)
천문동으로 이동하는 셔틀버스 모습
셔틀버스 안에서 본 통천대교
천문산이 짙은 안개에 쌓여 시야가 매우 좋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천문동 정상까지는 999개의 계단으로 이뤄졌으나 사진처럼 주차장 계단에서 천문동의 동굴이 보이지 않았다.
천문동으로 가는 계단 중간까지 올라갔으나 안개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고 날씨 또한 춥고 시간이 없다고 해서 도중에 내려와 버렸다.
주차장 주변에는 3~4개의 상점이 있었는데 상호와 가격 모두가 한글로 표기되어 있었으며 점원들도 한국말을 잘했다. 종이컵에 어묵 3개와 국물 약간을 담아주고 천원이라고 했으나 국물 맛은 단지 뜨거운 맛 만으로 먹어야 했다.
잠시후 갑자기 진눈깨비가 내리고 안개가 짙어 할수 없이 부산나게 셔틀버스에 탑승을 하고 하산을 하였다. 그때 가이드가 우리가 입장한 천문사 입장권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을 보고 잽싸게 주어서 확인했더니 천문산 관광은 티켓은 우리나라 현금카드 같은 모양과 재질이었으며 입장료는 208위안 표기되어 있었다. 한국 돈으로 35,000원 정도이다 그런데 우린 여행사에 70달러 한국 돈 81,000원을 추가옵션으로 부담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대부분의 여행사가 천문산 옵션은 70달러로 판매하고 있고 이는 중저가 여행사가 옵션상품에서 부족된 여행비용을 충당하기 위함으로 이해되었다.
안개속에 쌓인 천문동 입구의 전경
안개속에 쌓인 천문산 자락(셔틀버스에서 촬영)
다시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아서 케이블카 경유지에 도착한 후 케이블카를 타고 장가계 시내에 도착했다.
18:10여분 어둠이 내려서 도시가 캄캄한데도 장가계 지역의 토착 소수민족의 민속문화관인 토가 풍정원으로 향했다. 토가풍정원은 3층 규모의 목조건축물로 토가족의 문화 민속자료가 전시되어 있었고 옛날에 토가족이 사용했던 농기구 및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국의 생활용품, 농기구와 형태나 쓰임새가 비슷하였다.
전시관외에는 별 구경거리는 없었으며. 입구에 있는 광장에는 쇼 같은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무대와 자석이 설치된 공연장 있었으나 시간이 늦은 관계인지 일정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공연장이 비어있어서 10여분만 구경을 마쳤다.
토가풍정원 입구
토가풍정원내 전통사당
토가풍정원내의 박물관(오른쪽 건물)
그리고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김치를 곁들인 된장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된장국이라곤 하는데된장이 들어갔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밋밋하여 된장국의 맛을 전혀 느낄수는 없었다. 가이드가 처음으로 권하는 술을 곁들여 요기를 채웠다.
일행 중 몇몇 사람은 중국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고 컵라면을 먹었다. 물론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와 고추장 멸치 그리고 김을 수북히 상위에 올려 놓은 채
관광이나 여행은 그 지방이나 국가의 문화와 삶을 체험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음식까지 싸가지고 와서 관광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의 관광인지 궁금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귤이 맛이서 천원”이라고 외치는 어린이를 다시 만났다.
이 친구는 우리의 관광코스와 일정을 미리 파악하고 있는 듯 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관광객이 우리와 같은 코스로 우리와 같은 식당에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행동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관광 모습이나 형태가 어떠 하는지도 궁금해졌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발맛사지를 받기 위해 이동하였다. 발맛사지업소 주변에는 한국인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가이드가 차속에서 장가계에서 제일 잘하는 집으로 특별히 모시고 간다고 호언장담하더니 결국은 그들과 연계된 업소로 안내되었다. 발맛사지는 옵션상품으로 20달러 였다. 천문동의 입장료와 비교해 볼 때 실제로 지출되는 비용은 얼마일지 궁금 해졌다..
발맛지업소는 수개의 홀이 있었고 약30여명이 들어갈수 있는 홀로 안내되었다. 홀 안은 어둠컴컴한 조명아래 30여개의 안락의자가 놓여져 있고 보조의자가 각각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미 다른팀 10여명이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후 10대후반 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들어와 남자는 여자종업원이 여자는 남자종업원이 자리잡고 대야속의 미지근한 물에 발을 담게 하곤 맛사지를 시작하였다. 동작과 행동이 모두 일률적으로 행하였다.
가끔식 “아파요” “시원해요” 라고 말할 뿐 한국말은 알아먹지 못했다. 가끔 짖굿은 질문을 하면 웃기만 하였다. 다른 동료가 통역을 해주고 때론 대신 답변을 해 주곤 했다. 한국말을 제법하는 종업원 한명은 돈을 많이 벌어서 한국에서 발맛사지업소를 차린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발맛지를 마치고 숙소인 청화금강호텔에 도착하였다. 5층 규모의 현대식 건축물로 시설이나 규모는 5성급 호텔로 내부시설도 깨끗하였다.
장자계의 호텔 전경 모습
호텔 내부의 모습(비치된 일회용품은 무료)
호텔내부 화장실 모습
호텔 주변의 주택들의 모습(멀리 돌봉우리 산이 보임)
2부(장가계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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