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외여행

베트남 여행 1부

정숙언니 2010. 1. 27. 13:58

 

베트남 여행

 

일시 : 2009. 1. 23 ~ 26일(4박 5일)

일정 : 광주 → 인천공항 → 하노이(1박) → 닌빈 → 하롱베이(2박) → 하노이(1박) → 인천공항 → 광주

경비 : 599,900원[유류할증 35,000, 가이드팁 40,000원 (옵션 다금바리 30,000원)미포함]


  친구들과 오랜기간 고심하고 추진해 왔던 단체해외 여행을 베트남으로 결정하고 정겨운 친구들 10명과 함께 떠날수 있는 여행이어서 더욱더 감회스럽고 설레게 하는 여행이었다.

광주에서 12시경 승용차로 출발하여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된 16시 30분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출국 절차를 마치고 면세점에 들어가서 필요한 몇 가지를 구입하였으나 한률의 폭등으로 인하여 지난 여름철 보다 훨씬 비쌌다.

19:20분 아시아나 733기를 탑승하자 기내에는 관광객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정된 자석에 앉자 곧이어 식사가 제공되어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입국심사서 작성 하는등 무료한 시간 보낸 4시30만 22:50분경에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베트남은 한국인에 대해서는 15일의 체류나 관광은 무비자이고 한국시간 보다 2시간이 늦다.  

 하노이는 1954년 제네바협정에 의하여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된 뒤 공산베트남의 본거지가 되었고 1976년 베트남 전역이 공산화된 후에는 통일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정미(精米)·자동차 수리·자전거·기계·잡화 등의 공업이 성하며 베트남 경제의 축을 이룬다.

시가지는 왕조시대부터의 구시(舊市)와,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신시(新市)로 이루어진다. 구시는 30개의 탑문(塔門)과 성벽으로 둘려 있었는데 지금은 약간의 유적(遺蹟)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신시는 작은 파리로 불릴 만큼 프랑스식 근대건축물이 있고 현재는 정부 기관·국립극장·시립극장·호텔·박물관·종합대학 등이 있으며 구시와의 사이에 호안키엠[還劒] 호수 등의 관광지가 있다. 베트남 북부의 철도·도로·수운·항공로 등이 모두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고, 행정·상공업·문화·교육 등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공항에서 나오자 덥고 습한 기운이 느껴졌으며 한국의 초가을과 날씨와 같다고 했다. 50대로 보이는 남자 가이드와 20대의 베트남 현지인이 우리 맞이하여 대기중인 버스에 탑승했다. 가이드는 점잖은 톤으로 베트남의 관광은 한국에선 비수기인 시기로 가격도 싸지만 베트남 날씨등 조건을 고려해 볼 때 지금시기가 적기라고 했다. 베트남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하노이 시내에 있는 작은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은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시설은 한국의 여관 수준보다 못했다. 

첫째날 하노이 호텔 전경

  

호텔주변의 아파트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주변을 산책하는데 남루하고 왜소한 노동자들이 호텔주변에서 일자리를 찾는 듯 서성거리고 있었고 호텔 주변에는 오래된 아파트, 연립 주택이 밀집되어 있었다. 대체적으로 베트남인은 약간 검은 피부에 체격은 왜소하고 키가 작았으며 의복은 깨끗한 편이 아니었다.

호텔 내 식당에서는 뷔페식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전세버스를 이용하여 호치민의 묘로 향했다.

 베트남의 혁명가·정치가, 구(舊)베트남민주공화국 초대 대통령. 베르사유회의에 출석하여 '베트남 인민의 8항목의 요구'를 제출하여 유명해졌다. 이후 혁명운동을 계속하며 베트남의 독립 총봉기를 주도해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정부 주석으로 취임하였다.

호치민 묘는 시내에 위치하고 있고 출근시간에 겹쳐 시내로 향하여 도로는 주로2~4차선으로 차량, 오토바이, 자전거로 분볐다. 특히 도로에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많았으며 대부분이 2명이상이 탑승하고 안전모는 많이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차량사이로 끼어들어 교통 혼잡을 가중시키는 것 같았다.

도로변에 즐지어 자리잡고 있는 가게의 간판은 한문, 베트남어로 표기되었으며 가끔은 한글의 광고판도 눈에 띄었다. 점포의 형태는 한국의 재래시장의 모습처럼 질서가 없고 진열된 품목도 정돈되지 않아 어수선한 느낌을 받았다.

작은 가게 앞에는 대부분 작은의자(한국의 목욕탕의자 또는 그 높이의 나무의자) 4~5개가 비치되고 그곳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선술집 같은 작은식당 앞에는 인도에 테이블을 4~5개를 설치하고 국수등 먹거리를 팔고 있었고 사람들이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도 있었다.      

가게의 크기는 획일적이라기 할 만큼 전면의 폭은 약3미터 정도로 동일하게 구획되어 있었다. 건물은 대체적으로 노후되어 있었으며 목재와 기와를 소재로 하였다.

  호치민 묘에 도착하자 넓은 광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광장 중앙에는 2~3층 규모의 사각으로 건축된 묘와 맞은편에는 철재구조물 높은 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효치민 묘내에는 중앙에 호치민 동상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시신은 방부 처리하여 시민에게 공개한단고 했으나 우린 보질 못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국부로 존경받고 있어 묘안에는 반바지나 슬리퍼 차림으로는 입장할수 없다고 했다..

버스창문으로 본 하노니 거리모습

 

 

호치민 묘

 

호치민 묘 앞 광장

  

호치민묘역을 지나 도보로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박물관은 3층 규모로 건축물의 러시인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한다 디자인으로 웅장한 면은 있었으나 마감은 섬세하지 못했다. 내부에는 호치민의 젊은시설의 사진과 친필 편지등과 유품 그리고 그의 업적등을 담은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으며 3층에는 그의 동상에 설치되어 있었다. 동상으로 볼 때 호치민의 키는 베트남인 처럼 그리 크지 않았다. 출구는 동선을 고려해서 측면으로 나가도록 되어 있었다.

출구 주변에는 테이블 3~4개를 설치한 야외 작은 찻집이 있고 전통차와 비스켓류를 팔고 있어 우린 커피를 사서 마셨는데 맛은 형편이 없었다. 가격은 5000동으로 한국돈으로 400원 정도했다.          

호치민박물관내의 호치민의 동상

 

이어 인근에 있는 호치민의 생가로 도보로 이동했다.

호치민의 생가는 조경이 잘된 공원처럼 느껴졌으며 수백년된 고목과 활엽수들이 조화를 이루고 특히 더운날씨 탓에 그늘을 만들어 줘서 싱그러운 기분이 들었다.

생가는 전체를 공원화 하여 관리하고 있었으며 나무와 바나나잎을 이은 건축물들이 곳곳에 있었다. 호치민의 직무실는 규모가 매우 작은 2층으로 되어 있었으며 아래는 회의실 및 접견실로 약10평정도이고 2층은 직무실 약7평과 침실 약3평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침대와 책상만 갖추고 있었으며 대통령의 직무실이라는 치장이나 휘장등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실제로도 호치민은 생존시 근검한 자세로 살았으며 평생 3컬래의 신발과 3벌의 인민복만 입었다고 한다.

그 외 호치민의 생가, 공산당본부 건물들도 20여평 내외의 작은 규모로 벽면은 노란색으로 채색되고 지붕은 기와 구조로 되어 있었다. 호치민이 노란색을 좋아하여 정부건물은 노란색으로 채색하거나 건축하였다고 한다.

공원 중앙에는 호치민이 산책하는 연못이 있었으며 연못 주변의 나무의 뿌리가 서로 얼키고 위로 솟아나는 모습이 이루고 있는 기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또 한쪽에는 한 기둥 사원있었다. 기둥 하나가 연못속에서 건축물을 지지하도록 건축되었다고 해서 한기둥 사원이라고 명명되었고 이사원에서 기도를 하면 자식이 번창 한다고들 믿는다고 했다.

호치민 생가내 공산당본부 건물

 

호치민 생가내의 산책로

 

호치민 생가내의 호수

 

연못가에 기이한 모습의 나무 뿌리

 

호치민 생가내의 한기둥 사원

 

2시간여 구경을 마치고 육지의 하롱베이라는 닌빈의 땀꼽으로 향했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농촌지역의 풍경을 볼수 있었다. 농경지는 광활할 정도로 넓고 편편한 모습이 경지정리가 한것 처럼 보였다. 농가주택 주변에는 대부분 바나나 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있으며 특히 작은 연못 같은 곳이 많았으며 연못의 물과 주변은 더러웠지만 오리는 한가로이 놀고 있었다. 들판에는 베트남 전통모자인 돈을 쓴 농부와 물소와 비슷하게 생긴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도 더러 볼 수 있었다.

국도변의 주택도 시내와 마찬가지로 획일적으로 전면은 약3미터 정도 종방향은 약10여미터로 1층은 점포 2층은 주택의 구조되어 있었으며 건물의 외관은 불교적인 색채와 디자인으로 건축되어 있었다. 때론 2개의 건축물의 합병하여 사용하는 건물도 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이 같은 구조 였다. 가끔식 도로변의 외딴 건축물도 이처럼 건축된 모습을 볼 때 법이나 규정으로 대지를 규정하고 있는 곳으로 보여졌다.

그리고 1층은 완성되고 2층은 구조물만 미준공 건축물도 비닐이나 천 등으로 가리고 생활하는 주택도 있었다. 이는 베트남의 날씨가 아열대성 기후로 주택에 한국처럼 난방시설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국도의 교통량은 한가한 편이었고 주 통행 차량은 낡은 화물차와 오토바이였다. 도로폭은  왕복2차선이나 때론 왕복4차선도 이고 차량들은 경음기 사용을 자주하는 편이었다.

약 2시간여 동안 가는 동안 국도변 농촌의 길목에서 자판대에서 파는 귤을 저울을 사용하여 3000원 정도 샀는데 비닐봉지 3개 분량을 되어서 20여명이 맛있게 먹었다.  

 

하노이 시내의 주유소 모습

  

출근길의 오토바이 행렬

  

국도에서 벗어나 농로를 돌고 얼마가지 않아 닌빈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시간에 되어서 근처식당으로 들어섰다.

주 메뉴은 돼지고기 묶음과 야채 그리고 밑반찬 몇 가지 종류였으나 맛은 괜찮았다. 다만 밥은 찰기가 없고 쉽게 부스러져 젓가락으로 먹기 불편할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자 식당에서 베트남 모자인 “논”을 서비스로 주었다. 소재는 우리나라 밀짚모자와 비슷한데 소재는 바나나 잎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으며 땀꼽에서 배를 탈 때 얼굴이 타지말라고 주는것이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논” 하나씩을 쓰고 3분여 걸어가자 제방 나오고 제방에 올라서자 넓은 호수가 펼쳐졌다.  

 땀꼽(Tam Coc or Tom Coc)이라는 말은 "세 동굴"을 뜻하며, 실제로 이곳에는 항카(Hang Ca), 항하이(Hang Hai), 항바(Hang Ba)로 각각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하노이에서 100km 남동쪽 닌빈지방의 호아루에 있는 닌하이 마을(Ninh Hai village)에서 볼 수 있다. 이 동굴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이며, 딘칵(Dinh Cac)에서 시작되는 2~3시간 거리의 120km(75마일)에 이르는 수로이다. 물줄기가 흘러드는 동굴들은 형태와 색깔이 각각 다른 아름다운 종유석과 석순으로 이뤄져 있으며, 항카동굴은 길이 130m로 가장 길고 거대하며, 압도적인 주변경관이나 분위기를 선사한다.
오동강 물줄기를 따라서 낚시나 그물로 고기를 잡으며 생업에 종사하는 베트남 남부의 사람들도 볼 수가 있고, 기괴한 형태들의 바위와 때묻지 않은 자연사이로 무리지어 헤엄치는 오리들과 고기들을 볼 수 있다.
탄 선착장 주변에는 높이 60미터의 웅장한 흥동굴이 있다. 동국 뒤편은 "하늘로 이르는 길"이라는 급경사길이 있고, 중간에 13세기에 트랑 왕조의 창시자인 트랑 타이통을 기리는 타이비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비취색 돌로 정교하게 지어진 사원 뒤편은 캄손이라 불리는 웅장한 돌산이다. 하롱만과 주변경관이나 분위기가 비슷해 "작은 하롱", "육지의 하롱베이"라 불리기도 한다

넓은 호수와 호수를 감싸고 있는 산들 그리고 호수내의 수초식물들의 군락 그사이를 한가로이 흘러가는 나룻배가 여행에 찌든 마음을 한번에 날려 버렸다.

선착장에는 베트남 전통복장을 한 아가씨들이 수십척의 작은 나룻배에 앉아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이 나룻배를 삼판이라고 한다고 했다.

순서대로 2명이 나룻배에 탑승하면 아가씨들이 호수같은 습지를 한가로이 노를 저어 수초군락 사이사이로 저어 갔다. 아가씨들의 10대중반 정도로 어려 보였으며 몇마디 말만 건너면 뜻은 알지 못하면서도 웃음을 짓곤 했다. 이것 여자들의 생계수단이라고 했다.

호기심에 어릴쩍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를 달라고 해서 저어 봤지만 방향이 gms틀어지고 나가길 않았다. 물은 맑아서 바닥이 훤이 보였으며 수심은 1미터 정도였다. 일행 중 배에서 장난을 치다가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 물가에 우뚝 솟은 돌 봉우리들과 기암괴석을 감고 들자 작은 동굴이 나왔다 나룻배를 타고 20여미터 되는 동굴을 돌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는데 약40여분이 소요되었다. 나룻배에서 내리면서 1달러를 지급하였다. 그러나 노젓는 아가씨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20페센트도 안된다고 했다.

배에서 내리자 길가에서 모자와 하얀면의 천에 얼룩 달룩한 수놓은 보자기를 사달라고들 했다. 카우보이 모자를 1달러 구입했다. 어떤이는 식탁보로 사용하기 위해 수놓은 보자기를 20달러에 사기도 했다

 

땁꼽습지와 삼판

   

삼판 타기 체험

 

땁꼽의 아름다운 모습

 

동굴내의 모습

  

땁꼽의 결정 바닥에 수초가 보임

 

아름다운 호수를 뒤로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2시간 동안 달리자 하롱베이로 도착했다.

하롱베이는 바닷가를 접하고 있는 작은 소도읍과 같았다.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삽결살에 소주 한잔씩 나누어 먹었는데 삽결살이나 야채의 맛은 한국맛과 별 다른것이 없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난 후 시내구경을 하였다. 호텔 앞에는 과일 노점상이 몇 군데 있었고 작은 선술집 앞에는 작은 의자에 몇몇이 앉아서 국수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또 한쪽 골목에는 관광객을 위한 맛사지 업소가 여러곳 있었다.

월남국수를 먹고 싶어서 선술집 한 곳으로 무작정 들어가서 국수를 시켰다. 선술집의 위생상태는 매우 불결했지만 개이치 않았다. 가격은 베트남 돈으로 5000동이었다.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400원 정도였다. 국수는 미리 삶아놓은 면에 야채와 돼지고기로 우려낸 육수를 붓고 돼지고기 몇 점을 올려주었다. 그러나 맛은 예상외로 비린내나 잡냄새가 나지 않고 깔끔한 편이었다.

우린 맛사지를 받기 위해 업소 몇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손발을 동원하고 글씨를 써가면서 요금 흥정을 하였지만 좀처럼 깍아주지 않아서 할수 없이 전신 맛사지를 40달러에 하기로했다.

맛사지 홀은 7~8명이 들어 갈수 있는 작은 방에 안락의자가 비치되어 있었고 남여 각각 다른 홀에서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성껏 맛사지를 해주었다.

맛사지를 하고나니 나른했던 몸이 한결 풀린 것 같았다.

호텔앞 노점상 가게에서 값싸고 희기한 과일을 사서 호텔방에 일행들과 함께 소주한잔과 곁들어 먹었다.

 

하롱베이의 호텔(2박)

 

호텔내 객실의 모습

 

 

호텔주변의 맛사지 업소 전경

 

호텔주변에 있는 해삼물 노점상

 

호텔주변의 선술집의 모습 가게앞 모습이 인상적임

 

죄송합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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